
작가 소개
저자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의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트리니티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프랑스어 강사가 되었지만 건강 악화와 부친 사망을 계기로 그만두었다. 이후 1939년 2차 대전 중 프랑스에서 친구들과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 그로부터 50년대까지 왕성한 집필 활동이 이어졌다. 1952년 출간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시상식 참가와 인터뷰를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작가는 뛰어난 언어 능력으로 영어와 프랑스어를 번갈아가며 작품을 썼는데 그 이유가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인 즉슨 외국어로 쓴 글을 통해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이야기를 쓰고자 했다고 해석된다. 베케트는 또한 종래의 희곡과 연극방식을 완전히 뒤엎고 그 이후의 새로운 연극 형식의 발전에 전환점을 몰고 온 인물이라고 한다.
작가에 대해 추가로 조사한 내용은 감상부분에 덧붙였다.
제목보고 상상하기
많은 사람들이 고도(Godot)를 고도(高度)로 착각하여 비행사들의 이야기라고 예상하고 책을 펼쳐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상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 책이 고도(Godot)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이야기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고전이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서 아주 멋진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고 기대가 컸다. 고도가 대체 누구길래, 그를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줄거리
제 1 막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은 고도(Godot)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누군지도, 기다리는 이유도 모르는채 의미 없는 대화만 나누며 기다린다. 그러던 중 지나가는 포조, 럭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럭키는 짐을 잔뜩 짊어진 사람, 포조는 그에게 폭언과 채찍질을 하는 사람이다. 읽는 나도, 보는 고고와 디디도 불합리하다 생각하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포조와 럭키 또한 당연하다는 듯 행동한다. 그들이 떠나고 해가 지기 직전, 고도 밑에서 일하는 소년이-자신이 불행한지 아닌지도 모르는-와서 고도는 오늘오지 않고 내일 온다고 전한다.
제 2 막
어제 만났던 포조와 럭키가 다시 두 사람 앞을 지나가는데 포조는 왠일인지 눈이 멀어 있다. 고고와 디디는 포조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언제부터인지도, 이유도 모른다며 역정을 냈다. 그들이 떠나고 에스트라공이 잠이 든 뒤 블라디미르는 독백을 한다. 본인이 어제 일에 대해 이야기해도 아무도 기억을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가 과연 얼마만큼 사실일지 자문한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어제와 같은 소년이 와서 고도는 오늘 오지 않는다고, 내일 온다고 전한다. 블라디미르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소년에게, 블라디미르는 그저 자신을 만났노라 전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깨어난 에스트라공과 또다시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짧은 감상
이 책이 나에게 굉장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란 기대와 더불어, 얇아서 금방 읽겠다는 예상까지 다 틀려버렸다. 읽는 중에도 힘들었지만 다 읽고 나니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스스로 뭘 하는지 모르는 만큼 나도 뭘 읽은 것인지 모르는 기분이 되었다.
이들은 반복해서 ‘가자’ ‘갈 수 없어’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맞다’ 같은 의미 없는 대화를 한다. 그렇게 할 일이 없을까 싶었고, 얼마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삶인가 개탄스러웠다. 시덥잖은 얘기나 하면서 고도를 기다릴거라면 그냥 집에 가거나 소년을 쫓아가면 되잖아, 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하고싶으면 하면 되잖아'라는 말이 언제나 통용되는 말이었나? 나의 재작년을 돌아보았다. 그시절 나는 나쁜 일을 겪고 있었다. 그 때 주변의 어떤 이는 대수롭지 않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냥 하면 되는데 뭘 그래. 힘 내."라고 했지만 그런 조언을 들은 날에는 어쩐지 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버텨내거나 놔버리는 것 뿐이었는데, '하면 된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런 내가 수동적이고 한심해 보였겠지만 사실 놓지 않고 버티기로 결정한 것도 겨우 용기를 낸 선택이었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데, 전쟁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 개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무력한 존재가 된다. 전쟁은 내가 겪은 일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사건이라 더 큰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책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고도를 기다리는 모습은 막연하게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공감과 위안을 줬을 것 같다. 나는 그 둘이 언제까지나 의미없는 대화를 이어가며 고도를 기다리기를, 종국에 목을 매버리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처음 내가 둘의 대화를 비난했던 이유는, 타고난 성격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실없는 농담의 역할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지만 원체 효율성을 중요시 여기는 성격인지라 고고와 디디가 시간낭비를 하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음을 고백한다.
내 가까이에 실없는 얘기를 자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말도 안되는 얘기좀 하지 말라며 제대로 듣지도 않고 뒤돌아설 때가 태반이었는데, 사실은 집에 가서 정말 말이 안되는 얘기인지 곱씹어보곤 했었다. 꼭 이렇게 다시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시덥잖은 농담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 무의미해 보이는 말이 사실은 삭막한 삶에서 웃을 거리가 되기도 했고, 옆에 이런 농담을 하는 그가 있었기에 많은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목이나 매자고 말하는 에스트라공에게 블라디미르가 진지한 핀잔을 줬다면 둘은 계속해서 고도를 기다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가 나에겐 너무 해괴하게 느껴져서 작가 베케트에 대해 자료를 좀 찾아보았다. Ronan McDonald가 집필한 『The Cambridge Introduction to Samuel Beckett』라는 저서를 보면 사뮈엘 베케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언어의 한계를 비판하고 싶어했다고 하였다. 『고도를 기다리며』 뿐만이 아니라 베케트는 다른 작품에서도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거나 침묵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언어를 통한 소통의 실패와 인간 존재의 고독을 묘사하고자 했다고 한다. 베케트는 2개 언어를 전공하는 등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가진 사람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야기하는 언어의 한계가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언어만으로는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의 불완전성은 언어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완전한 각각의 예술(이를테면 그림이나 음악 같은)의 형태가 복합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면서도 괴로워하고 그림과 음악을 동경하나보다.
1949년 《Transition 49》에 발표된 '세 개의 대화'에서 베케트가 피에르 탈 코아트의 미술 작품에 대해 한 말을 찾아 덧붙이며 감상을 마친다.
The expression that there is nothing to express, nothing with which to express, nothing from which to express, no power to express, no desire to express, together with the obligation to express.
(표현해야 할 것이 없고, 표현할 수 있는 것조차 없으며, 표현할 근원도 없고, 표현할 능력도 없고, 표현할 욕구도 없지만, 그럼에도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표현.)
책 속의 또다른 문장들
150p.
블라디미르: 벙어리라! 언제부터요?
포조: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앞으로!
151p.
블라디미르: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벗겨지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잠들어버린다. 블라디미르가 그를 다시 바라본다) 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다시 얻어맞은 얘기나 할 테고 내게서 당근이나 얻어먹겠지… (사이)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르다. 자게 내버려두자고. (사이) 이 이상은 버틸 수가 없구나. (사이)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지.
남겨진 질문들
1. 베케트가 자신의 희곡에 남자배우만 섭외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일까?
- 오경택 연출가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에는 원래 고고에 신구, 디디에 박근형, 포조에 김학철, 럭키에 박정자, 소년에 김리안이 섭외되었다. 하지만 앙코르 공연부터 박정자와 김리안이 빠지고 조달환과 이시목이 새롭게 합류했다. 이유는 베케트 에스테이트 관계자가 공연 관람 후 ‘여배우 출연에 따른 럭키와 포조 사이의 에너지가 작가의 의도와 달리 부족했다’고 판단하여 럭키 역을 남자 배우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국민일보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0075050&code=61171211&cp=nv)
베게트 에스테이트의 이런 행동은 베케트의 작품 의도를 해치지 않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베케트는 생전 새로운 해석이 작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해 자신의 희곡 그대로 무대에 올릴 것을 요구하였고, 실제로 여배우가 섭외된 경우 소송을 건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케트는 왜 남자 배우만 써야 한다고 생각 했을까. 베케트는 무채색의 극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가끔 무대에 올라갈 일이 있는데, 여자인 내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옮겨진다고 했다. 베케트는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고, 연극은 최대한 지루하게 연출해달라고 했다. 아마도 당시에 별로 없던 여자 배우가 무대에 등장함으로써 시선이 분산되고 지루함이 깨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 극 중 포조와 럭키를 등장시킨 이유가 뭘까?
- 이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고와 디디는 친구 관계인데 럭키와 포조는 상하 관계로, 둘은 서로 상반되는 관계이지만 사실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진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 이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셨다면 의견을 나눠주시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3. 이렇게 무의미한 대화만 가득한 작품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상연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 좋은 작품은 답이 없어서 해석의 여지가 많고 청자들이 계속해서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는 이야기여서가 아닐까.
처음엔 '뭐 이런 어이없는 책이 다 있지?' 라고 생각 했지만, 명확한 설명이 없기에 각자의 삶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점에서 놀라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베케트는 미완성의 책을 완성해서 우리에게 남겨두고 독자가 글의 주인공이 되게 만들어 주었다.
이 듬성듬성한 책 사이사이에 내 생각이 스며들어서 나를 닮은 책이 생겨났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은 후에 많은 이들이 나에게 고도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기다리는 대상이나, 고고와 디디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심지어는 내 안에서도 시기에 따라 계속 달라져서, '고도'를 특정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 같다. 나는 항상 인생에서 실체가 있는 일을 하고 대단한 것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사실 그것을 견뎌내는 과정 자체가 삶인 것 아닐까.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고고와 디디에게 서로가 있어서였다고 생각한다.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리뷰] 새의 선물 - 은희경 (0) | 2025.02.05 |
|---|---|
| [책리뷰] 채식주의자 - 한강 (1) | 2025.01.20 |
| [책리뷰]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10) | 2024.09.08 |
| [책리뷰]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0) | 2024.08.04 |
| [책리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4) | 2024.06.08 |